과거에 필사한 칼럼 중 몇 개를 올리지 않았다는 걸 알게되었습니다. 근래 잘 읽은 칼럼 몇 개와 함께 포스팅합니다.
특히 김혜영 기자가 사회학자 엄기호씨를 인터뷰한 “고통에 귀 닫은 한국사회... 약자 목소리 경청을”, 1994년 김병찬 기자가 막 『토지』의 집필을 마치신 박경리 소설가를 인터뷰한 '25년만에 대하소설 「토지」완료 박경리씨' 이 두 기사는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고통에 귀 닫은 한국사회... 약자 목소리 경청을” / 김혜영 (사회학자 엄기호 인터뷰)
“자동차 사고가 났을 때 뒷목을 잡고 나오는 사회는 근대 사회가 아니에요. 보험사든, 변호사든, 수사기관이든 제도가 나를 매개하고 대행해주는 게 근대 사회잖아요. 누구나 원하는 시민적 우아함과 품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한 사회. 내가 지금 고통받고 있다고 직접 비명을 지르지 않아도 제도가 나를 매개해주고 대변해주는 삶. 지금 우리가 잃어버린 게 이거죠. 매개되는 삶에 대한 신뢰.”
목숨값 4만원 / 최문선
얼마 전 서울 종로구 고시원에서 불이 나 7명이 숨졌다. 방 창문으로 탈출해 살아남은 사람이 여럿이다. 창문이 생과 사를 갈랐다. 고시원엔 창문 없는 방도 많았다. 창문 있는 방의 월세가 창문 없는 방보다 4만원 비쌌다는 신문 기사를 봤다. 4만원은 평소엔 햇빛이고 바람이었을 거다. 결정적 순간엔 목숨 값이 됐다.
셜록 홈스적인 세계 / 박권일
명징·직조·사흘·금일·무운 사태에서 정작 눈여겨보아야 하는 점은 젊은 세대의 무지 자체가 아니라 무지에 대한 태도다. 그들은 저 단어를 모르는 걸 부끄러워하기보다 ‘내가 왜 그걸 알아야 하느냐’는 듯 당당했다. 이게 핵심이다. 모르는 것이 수치스러우려면 그것이 중요한 지식이라는 합의 내지 감각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공통 감각이 없거나 옅다면, 무지는 더 이상 부끄러운 게 아니다. 그것은 단지 ‘취향’의 문제가 되고, 더 나아가면 “난 그걸 알기 싫다”는 ‘적극적 무지’에 가닿게 된다.
25년만에 대하소설 「토지」완료 박경리씨 / 김병찬 (소설가 박경리 인터뷰)
― 선생께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생명에 연민이 없이는 글을 쓰지 말라」고 하셨는데 대하소설 「토지」의 사상적 기조와 한 소설을 오랫동안 이끈 동인은 무엇입니까.
『모든 대상에 개념을 붙여서 정의를 내리면 본 뜻이 상실되고 부정확해지지만 굳이 한마디로 하자면 생명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을 포함해 모든 생명은 모순으로 존재한다고 봅니다. 탄생과 죽음, 성장과 도태, 밝음과 어둠, 선과 악, 그런 상충적 요소들 말입니다. 그래서 비극이 있고 한이 생기고 그런 상반되는 것들이 섞여 강물처럼 생명은 흘러갑니다.
(...) 성장을 위해 도태되는 부분, 그것을 돌봐주고 길러주려는 연민으로 「토지」는 지속됐습니다.(…)』
"내겐 축제가 없어요" / 박인규 (소설가 박경리 인터뷰)
“희망이라는 말을 붙이기엔 현실이 너무 비참하지 않아요, 꼭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작가는 우리 주위에서 무너져 가는 것들-인간다움, 생명 존중 같은 정신적 가치들-을 보고 있노라면 꼭 소돔과 고모라 같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욕망의 충족을 사랑이고 자유라고 착각하면서 거짓 희망을 얘기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욕망은 자유를 저당잡히고 자기를 얽어맨다는 점에서 현실은 분명히 절망적이라는 말이었다.
“현실이 지나치게 희망으로 과장돼 있어요. 또 거기에는 선동적 요소도 있구요. 그래서 실체를 보라는 말이죠. 땅바닥에 내려와 두 발을 딛고 실상을 보라는 말이죠. 거기서 가능성을 찾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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